법흥사(法興寺) 터
법흥사는 신라 진평왕 때
북악산 동편 기슭에 세운 절로 알려져 있으며
지금은 축대, 주춧돌만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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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흥사는 신라 진평왕 때
북악산 동편 기슭에 세운 절로 알려져 있으며
지금은 축대, 주춧돌만 남아있습니다.
창의문에서 북악산 정상 방향으로
약 200m 떨어진 계곡에 있는
작은 암자가 있던 자리입니다.
바위굴, 마애 미륵보살 입상이 있고
여러 바위에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서울 한양 도성은 서울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조선 시대의
도성으로, 둘레는 약 18km입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누상동 산1~3번지 일대로,
남대문과 동대문 등의 성문과 암문(暗門), 수문(水門), 여장(女墻),
옹성(甕城) 등에 방어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1963년 1월 21일에 사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조선 시대에 세운 것으로 한양 도성의 북쪽 정문입니다.
본래 이름은 숙청문(肅淸門)이었으나 중종(재위 1506~1544) 이후에
숙정문(肅靖門)으로 바뀌었습니다.
북악산 정상에 바위 두 개가 있습니다.
이 바위에는 선사 시대 때 작은 돌로 바위 표면을
갈아 낸 홈인 성혈(性穴)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어린 아이를 안고 있는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부아암(負兒岩)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조선 후기 화가인 겸재 정선의 <부아암>을 탄생시킨 풍경으로
백악 정상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청와대 뒤 북악산 동쪽 끝에 있는 이 바위는 북악산의 끝이라 하여
말바위[末岩]라 하기도 하고, 바위 모양이 말머리와 흡사하다 하여
말바위[馬岩]라고도 한다는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성북동, 동대문, 세종로, 경복궁 등을
포함한 일대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숙정문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약 400m 떨어진 지점에 있습니다.
일제는 이 바위의 윗부분에 쇠말뚝을 박아 우리 민족정신을
말살하려고 했고 광복 후 이 바위의 쇠말뚝을 제거하고
우리 민족의 발전을 기원하는 촛대를 세우며 이름을 ‘촛대바위’로
정했습니다. 2006년 4월 1일 숙정문과 함께 삼청터널 북쪽
홍련사에서 도성(서울성곽)을 따라 이곳까지 약 1.1km가
일반인에게 공개되었습니다.
왕의 어머니가 된 일곱 후궁들의 신주를 모신 사당입니다.
저경궁,
대빈궁, 육상궁, 연호궁, 선희궁, 경후궁, 덕안궁을
모시고 있으며
1966년에 사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북악산 남측면의 정자와 함께 쉴 수 있는 쉼터.
양 옆으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기념 식수가 심어져 있으며,
청와대 전망대를 향하는
입구이기도 합니다.
출처: 문화재청